미디어에 비친 검정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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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번호:62] 학교 밖 청소년의 꿈과 제도적 차별

  • 관리자
  • 12.22
  • 120

    이기원 | 학교 밖 청소년

    2018년 8월4일, 학교는 나에 의해 버려졌다. 국가에서 정한 교과목을 그저 암기하고 따라가기만 한다는 것은 내게는 너무나도 갑갑한 일이었다. 더욱이 내가 다니던 학교의 교사들 중에는 학생의 성장보다는 스스로의 편의에 맞게 교육에 임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에게 학교는 반드시 해결해야만 할 과제라기보다는 내 꿈에, 내 인생에 날개를 달아줄 배움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당시 내가 보기에 학교라는 공간에서 더는 내가 배울 것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교사들의 관료적이고 경직된 사고를 배울까 봐 두렵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학교를 자퇴했다. 처음에는 내게 무한한 자유가 주어졌다. 학교가 정해준 수업을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책을 읽을 수도, 내가 가보고 싶던 곳에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아니라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에게 주어진 길은 협소했다. 내가 지원할 수 있는 대입 전형은 매우 적었고 나는 검정고시 접수 6개월 전에 자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해 검정고시를 볼 수 없었다. 시험 접수 6개월 이전에 자퇴한 청소년만이 검정고시에 응시할 수 있다는 법 규정 때문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해봤지만 소관 밖이라며 각하처분을 내렸다. 헌법재판소에서도 8명의 재판관이 고개를 저었다. 기회의 평등이라는 말이 당연시되는 시대에, 법과 제도는 아직까지도 우리의 기회를 부당하게 제한하고 있다. 혹자는 그럴 거면 왜 자퇴를 했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학교만 가면 미칠 듯한 공황증세에 시달려 아직도 정신과 진료를 받는 나의 사정도 감안해주길 바란다.

    그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교에서보다 더 많은 것을 학교 밖에서 배울 수 있었다.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의 선생님들은 나의 꿈과 진로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셨다. 그 결과 나는 시흥시 학교 밖 청소년 대표, 더 나아가 경기도 학교 밖 청소년 대표라는 영광스러운 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 경기도 청소년 대표로서 나는 수백명의 청중 앞에서 발표를 하거나 박사 학위가 있는 연구원분들과 대등한 자리에서 토론할 기회를 얻었다. 내가 학교 안에 머물러 있었다면 결코 이런 기회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나는 전국의 학교 밖 청소년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제도권의 차별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수많은 청소년을 보았다. 그중에는 수능을 봐서 국내 최고의 대학에 합격한 친구도 있었고 프로그래밍을 배워 많은 연봉을 받으며 회사에 취직한 친구도 있었다. 내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배움은 반드시 학교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학교 밖 청소년은 소수자이다. 학교 밖 청소년의 수가 적다는 것이 아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은 약 60만명으로 추정되며 전체 청소년의 15분의 1에 해당한다. 그보다는 사회적 목소리를 얻지 못하고 소외되었다는 의미가 더 크다. 대개 학교를 자퇴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유별난 아이라는 듯 쳐다보곤 한다. 남들 학교 갈 시간에 버스에 타서 ‘청소년입니다’라는 알림이 뜨면 이 시간에 학교 안 가고 뭐하냐는 버스 기사님들의 핀잔은 익숙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멸시보다 더 무서운 건 무관심이다. 이 글의 독자 중 상당수도 학교 밖 청소년의 존재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겪는 제도적 차별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독자들에게 내가 바라는 것은 우리를 좋게 봐달라는 것이 아니다.

    학교 밖 청소년이 모두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청소년인 것도 아니다. 학교 밖 청소년 중에서는 소위 말하는 ‘비행 청소년’들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내가 힘주어 말하고 싶은 것은 정말 다양한 청소년이 각자의 사정으로 학교 밖으로 나오며 그들이 제도적 차별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이 글을 읽는 독자가 ‘그런 삶의 방식도 있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이기를 소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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